한번 떠오른 생각을 지워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한번 떠오른 생각을 지워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시쿄인 히비키는 종종 자신이 도망쳐온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완벽하게 극복해 내지 못한 과거의 잔재, 미련, 그리고 끝끝내 정의 내리지 못한 채 미뤄둔 감정들이 한데 섞여 나약한 구석을 파고들어오면 히비키는 자신에게 다가왔던 사람들을 되짚어보고는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이치로 나기가 있었다. 이치로 나기는 친구라는 관계가 아니라면 정의할 수 없음에도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게 해준 사람이자, 보컬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지난 시간마저도 후회하지 않던 히비키의 유일한 후회가 되어버린 사람이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밤에 히비키가 나기를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어둡고, 습한 공기가 주변을 채운 밤에 혼자 있다 보면 어째서인지 더 외롭게 느껴지니까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프리파라에서 맺어진 친구들을 떠올리기도 하겠지만, 그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즐거움을 생각하며 웃다가도 마지막에는 꼭 나기가 생각나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계속 뒤척거리다가 결국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다음 날을 맞이하게 될 거 같아요. 그러면 분명히 하늘은 개었고, 맑고 따듯한 날씨가 되었는데도 어제의 기억과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 거죠. 그렇게 하루 종일 다른 사람과 즐겁게 지내다가도 마음 한편에 어떤 부채감 같은 것이 자리 잡아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늦어 친구들과 헤어졌지만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라던가,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공원에 있는 공중전화를 발견한다던가요. 평소에 나기와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었지만 그 주기가 짧지 않았고, 구태여 타인의 번호를 외울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공중전화 앞에서 수화기를 들고 가만히 서있던 히비키가 잠시 뒤 뭐에 씌이기라도 한 것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손으로 나기의 번호를 누르면 좋겠네요.
나기가 전화를 받더라도 히비키가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고 전화를 끊으면 좋겠어요. 물론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최근 나기와 전화를 걸면 화면에 찍힌 자신의 번호를 보고 나기가 조금 가라앉은, 혹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어서 누구냐고 묻는 평온한 목소리를 듣는 게 오랜만이었을 거 같거든요. 그래서 전화를 받았을 때의 멘트 “네, 이치로 나기입니다.” 하는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종종 공중전화를 찾아 나기에게 전화를 걸지 않을까… 이 사실을 나기가 꽤 오랜 시간 동안 눈치채지 못했으면 좋겠네요